2008년 07월 03일
러브 레터 (Love Letter, 1995)

영화 러브레터의 ost인 유키 쿠라모토의 A Winter Story를 듣다 보면, 뭐랄까, 가슴 한 구석이 아련해진다, 라고 하면 더럽게 상투적일지는 몰라도, 어쨌든 그렇다는 것이다. 그렇다는데 어쩔거야.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빠져 나올 때는, 뭐랄까, 방학전날 내가 방학숙제를 하나도 하지 않은 것을 알은 엄마가 나를 때리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나를 안아주는, 그리고 또 나는 같이 우는, 말하자면, 또 다음에 잘못할 거면서 반성하는 척하며 신파를 연기한 느낌이었다. 죄책감과 함께 찝찝한 감정이 나를 가지고 노는 날들이었다. 그리고 그 날들이 흐르다보니, 이제는 내 똥꼬에 털난것 뿐만 아니라, 이성의 음모(陰毛)까지, 그것도 몇명을 본 나이가 되었다. 1995년도 영화관 계단에 앉아 있던 찝찝한 감정 - 내가 왜 우는지 알 수 없는 - 은 잊혀졌다. 찝찝한 감정이 뭐냐. 기억도 가물가물한데, 그리고 지금은 기억을 또 다른 거짓말이라고 믿고 사는데, 나에게는 왜 영화에서처럼 비밀같은 아련한 추억이나 기억이 없을까. 새벽 1시 비가오는데, 문득문득 지붕 끝에서 떨어지는 비 알갱이처럼 가난하다는 생각. 재산이 없다는 생각.
한 가지 그런 기억이 있기는 하다. 중학교 3학년 때였다. (지금은 '그녀'겠지만)그 여학생은 우리반이었다. 성격같은건 알 수가 없었고(얘기를 붙일 엄두가 안 났다), 나름대로 그 여학생은 학내에서나 교외에서 인기가 꽤 있었다. 그런거 어디서 다 주워들어가지고, 도저히 접근하기가 힘들었다. 게다가 나는 연애라는 것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, 그러나 이상한 고백같지 않은 고백같은거는 어디서 주워들어가지고 몇 번해본 어설픈 남자였다. 아니 남학생이었다. 또한 나는 이상하게도 싸움을 잘 못했다. 그리고 한번도 덤벼보지도 않았다. 스스로는 참는거라고 생각했던것 같다. 지금 생각하면 다 자기합리화지만......그리고 조금 야비했던 것도 같다. 여하튼 이런식의 자기비하가 점철되어있는데, 교내외로 인기있는 여학생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. 그 여학생이 교내외로 인기가 있던 것처럼 남학생이었던 나는 내면도 외면도 누추했던 시절이었다. 지금 생각해보면 순진하기 그지 없지만, 그때는 꽤 심각했었다. 그때 내가 생각하던 남학생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.↓

욕심이 많았던 것이다.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, 나도 저런 모습+싸움+운동+공부=의 모습을 바랐는지도 모르는게 아니라, 글쓰면서 생각해보니 바랐던 것이다. 그러나, 꼴에 욕심이 많아서 '교내외에서도 인기있었던 그 여학생을 좋아했었다고' 합리적으로 생각해도, 그날, 교실에서 둘이 있던, 아침 햇빛에 업드려자던, 볼살이 입 옆으로 살짝배겨나온, 그 여학생은 나를 세상에서 지워버릴만큼 이상한 감정이라서 그것은 아무도 결론 내릴수가 없을 것이다. 그 여학생에 대한 나의 감정을 조금 합리화한다면, '그녀'가 되어있을 그 여학생에 대한 나의 기억은 합리적이지 않다. 거의 유일하게.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억의 재산의 전부다.

(후지이 이츠키 역, 나카야마 미호)
왜냐하면, 성인이 된 뒤 어느 술자리에서 그 여학생이 뒤치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.
현실에서 아름다운 기억의 재산을 지키는 일은 이렇게, 슬프다.
영화 러브레터가 나에게 아련한 것은, 그런 기억이 있는 후지이 이츠키들에 대한 질투심 때문인지도 모른다.
# by | 2008/07/03 01:34 | 영화 | 트랙백

